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Inflation Reduction Act의 약자입니다.
2022년 8월 미국에서 제정된 법으로, 물가 안정(인플레이션 억제)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핵심은 기후 변화 대응, 청정에너지 투자 확대, 산업 경쟁력 강화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IRA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후·에너지 투자 법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RA의 등장 배경과 재생에너지 세액 공제 혜택
미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이자, 동시에 화석연료 생산 강국입니다. 그러나 기후 위기가 심화되고, 유럽연합(EU)이 탄소중립과 그린딜 정책을 통해 글로벌 기준을 선도하자, 미국 역시 새로운 전략적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바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입니다. 이름은 ‘인플레이션 감축’이지만, 실제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기후·에너지 투자 법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RA의 핵심 중 하나는 재생에너지 세제 혜택 확대입니다. 미국 정부는 향후 10년간 3,690억 달러(약 50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기후 및 청정에너지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여기에는 태양광, 풍력, 에너지 저장 시스템, 수소, 전기차, 배터리 제조 등 광범위한 분야가 포함됩니다.
특히 세제 혜택은 IRA 정책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예를 들어,
1) 태양광·풍력 발전소 건설 시 세액 공제 확대
2) 청정에너지 생산에 대한 생산세액공제 신설 및 장기 연장
3) 전기차 구매 시 최대 7,500달러 세액 공제 제공 (단, 배터리와 핵심 광물이 북미산이어야 하는 조건 포함)
이러한 장치들은 단순히 기업을 지원하는 차원이 아니라, 미국 내 생산 유인을 강화하고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즉, 해외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 내에서 재생에너지 인프라와 제조업을 키우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IRA는 단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을 촉진하고,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제조업 기반을 강화하는 이중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후 대응을 넘어 산업정책적 의미를 지니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 됩니다.
일자리 창출 – 새로운 고용 시장
IRA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또 다른 효과를 가져옵니다. 미국 정부는 이 법을 통해 2030년까지 수백만 개의 청정에너지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전통적으로 화석연료 산업은 고용을 많이 창출했지만, 재생에너지 분야는 상대적으로 인력이 덜 필요하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IRA는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풍력 터빈을 제작·설치하는 과정, 태양광 패널 생산과 유지·보수, 배터리 공장 운영,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등은 모두 대규모 고용 효과를 수반합니다. 특히 제조업 일자리의 부활이라는 점에서 IRA는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미국 중서부 ‘러스트 벨트’ 지역은 과거 제조업 쇠퇴로 실업률이 높았는데, IRA를 통해 태양광 모듈·배터리·전기차 부품 공장이 이 지역에 집중적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환경 정책을 넘어, 지역 경제 재생 전략의 성격까지 갖습니다.
또한 IRA는 일자리의 질적 수준까지 고려했습니다. 단순히 고용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조합 임금 수준 보장이나 현지 고용 비율 같은 조건을 부과해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런 조건 덕분에 재생에너지 분야의 직업은 단순한 단기적 일자리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력 기회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큽니다.
흥미로운 점은 IRA가 신기술 분야의 인력 수요까지 견인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수소 생산·저장·운송, 스마트그리드 운영, 에너지 데이터 관리 등은 고급 기술 인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대학·연구기관·기업 간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미국 내 기술 생태계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즉, IRA는 단순한 에너지 법안이 아니라, 산업 인력 정책이자 지역 균형 발전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업 경쟁력 강화 – 글로벌 패권 경쟁 속 미국의 선택
IRA는 기후 대응을 넘어 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뚜렷한 전략적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중국이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희토류 공급망을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하고, 유럽연합이 그린딜과 탄소국경세를 앞세워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청정에너지 패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IRA를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IRA는 세제 혜택을 조건부로 설계해, 북미 지역 내 생산·조달을 강조합니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려면 배터리의 일정 비율 이상이 미국 또는 FTA 체결국에서 생산된 원자재로 만들어져야 하고, 최종 조립도 북미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는 곧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실제로 IRA 이후 미국 내 대규모 배터리 공장 건설 프로젝트가 잇따라 발표되었고,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같은 기업들도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또한 IRA는 수소 경제와 탄소포집저장(CCUS) 같은 차세대 기술에도 대규모 세제 혜택을 제공합니다. 이는 단순한 탄소중립 대응을 넘어, 미래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입니다. 미국은 풍부한 천연가스와 기술력을 활용해 ‘청정수소 생산 강국’으로 부상하려 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IRA는 두 가지 큰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국내 제조업 부활 –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내 생산을 늘려 에너지 안보와 고용을 동시에 강화.
글로벌 표준 주도 – EU가 탄소국경세로 국제 무역 규칙을 바꿔가듯, 미국도 IRA를 통해 기술·산업·투자의 흐름을 주도.
이러한 점에서 IRA는 단순한 기후 대응 법안이 아니라, 사실상 경제·산업 전략 법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IRA는 겉으로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기후 위기 대응, 산업 경쟁력 확보, 일자리 창출을 아우르는 포괄적 전략입니다. 재생에너지 세제 혜택을 통해 청정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고,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며, 제조업 경쟁력을 되살리고 있습니다.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미래 에너지 패권을 선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에게 IRA는 단순한 미국 내 법안이 아닙니다. 글로벌 산업 질서의 변화 신호탄이며, 앞으로 에너지·제조업·무역 구조를 뒤흔들 제도입니다. 한국 기업들도 이미 IRA에 맞춰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정부 역시 이에 대응하는 정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결국 IRA가 보여주는 것은 명확합니다. “에너지 전환은 곧 산업 경쟁력이다.” 앞으로의 10년, 기후 대응에 얼마나 과감히 투자하고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느냐가 국가 경제의 성패를 가를 것입니다. 미국은 IRA를 통해 이 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이는 전 세계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