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나라별 재생에너지 정책에 대해 알아보기로 할텐데 이번 글에서는 유럽의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재생에너지 확대 – 유럽이 선택한 탄소중립의 길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Net-Zero)을 달성하기 위해 ‘유럽 그린딜’을 내세웠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전략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크게 늘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상당 부분이 에너지 생산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청정에너지로 전환하지 않고서는 기후 위기 대응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U는 2030년까지 최종 에너지 소비의 최소 4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 때문에 이 목표를 더 높이는 논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태양광과 풍력이 그 중심에 서 있으며, 특히 해상풍력은 유럽의 특화 분야로 꼽힙니다.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 등은 북해를 활용한 대규모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분산형 에너지 생산도 눈에 띄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독일과 스페인은 주택·상업 건물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도록 지원하면서 시민들이 직접 에너지 생산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스마트 그리드와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같은 첨단 기술이 결합되어, 에너지 생산·소비·저장을 실시간으로 최적화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EU의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은 단순히 전력 생산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교통, 건물 난방, 제조업까지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으로 전환하려는 장기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전력 부문뿐 아니라 산업과 생활 전반을 저탄소 구조로 바꾸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에너지 전환이 곧 산업 혁신과 경제 성장 전략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화석연료 의존도 축소 – 에너지 안보와 기후 대응을 동시에
EU 그린딜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는 것입니다. 과거 유럽은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에 크게 의존했고, 특히 러시아는 유럽의 주요 공급원이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수급이 불안해지면서, EU는 화석연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EU는 ‘REPowerEU’라는 추가 정책을 통해 러시아 화석연료 수입을 빠르게 줄이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LNG(액화천연가스) 수입선을 다변화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수소·원자력으로 대체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석탄 퇴출 로드맵은 이미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독일은 2038년을 목표로 했던 석탄 발전 종료 시점을 2030년으로 앞당겼고,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이미 석탄 발전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천연가스 역시 중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와 수소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EU는 ‘그린수소’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산업용 고온 열원이나 철강·화학 공정에서 화석연료를 대체하려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에너지 효율화 정책도 병행됩니다. 단열 성능이 뛰어난 건물 리모델링, 친환경 교통수단 확산, 산업 설비 효율 개선 등이 포함됩니다. 에너지를 단순히 대체하는 것을 넘어, 아예 소비 자체를 줄이고 최적화하는 접근 방식입니다.
결국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는 것은 단순한 기후 대응 전략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 경제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수단입니다. EU는 이를 통해 국제 정치·경제적 리스크를 줄이고, 동시에 탄소중립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서려는 것입니다.
탄소국경세(CBAM) – 글로벌 무역 질서를 바꾸는 제도
EU 그린딜의 세 번째 핵심 축은 바로 탄소국경제(CBAM)입니다. 이는 단순한 환경 규제가 아니라, 국제 무역 질서를 재편하는 파급력 있는 제도로 평가받습니다.
CBAM의 기본 원리는 간단합니다. EU 역내 기업들은 엄격한 탄소 감축 규제를 따라야 하지만, 역외 국가에서 생산된 값싼 화석연료 기반 제품이 수입되면 역내 기업들이 불리해집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EU로 들어오는 제품에도 탄소 배출량에 따른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죠. 초기 적용 대상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기, 수소 등 탄소 집약도가 높은 산업군입니다. 하지만 향후 적용 범위는 확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CBAM의 도입은 여러 측면에서 큰 파급 효과를 가져옵니다. 첫째, 무역 구조의 변화입니다.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한 제품은 EU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한국, 중국, 인도 등 제조업 중심 국가들은 생산 공정을 친환경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글로벌 공급망의 저탄소화가 가속화됩니다. 단순히 최종 제품뿐만 아니라 원자재와 부품 단계에서까지 탄소 감축 노력이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셋째, 정치·외교적 갈등도 불가피합니다. 일부 국가는 CBAM을 ‘위장된 보호무역’이라고 비판하지만, EU는 이를 ‘기후 정의’와 ‘공정 경쟁’의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에게도 CBAM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철강, 석유화학, 배터리 등 주요 수출 산업이 규제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탄소 기술 개발, 수소 기반 생산 전환,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확대가 필수적입니다. 동시에 정부 차원에서도 탄소중립 정책을 EU 수준에 맞추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CBAM은 단순히 유럽의 정책이 아니라, 전 세계 무역 질서의 새로운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일본 등도 유사 제도를 논의하고 있으며, 결국 국제 무역에서 ‘탄소 배출량’이 가격과 품질만큼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결론 – 유럽 그린딜이 전 세계에 던지는 메시지
EU 그린딜은 단순한 환경 정책을 넘어, 산업 전략·경제 구조·무역 질서까지 바꾸는 거대한 프로젝트입니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후 위기 대응을 넘어 에너지 안보와 산업 혁신을 위한 선택이며, 화석연료 축소는 국제 정치적 불안을 줄이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경제를 만드는 기반이 됩니다. 또한 탄소국경세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기후 책임을 강제하며, 국제 무역의 새로운 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들에게 EU의 그린딜은 '기후 대응 = 경쟁력 확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10년, 유럽이 보여줄 정책과 실행 과정은 세계 경제의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미국의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